어느 한 사람이 코로나-19로
죽은 사람이 대부분 노인이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살아봤자 몇 년인데,
이참에 다들 가시면
고령화도 막고 부양을 책임져야 할
젊은 세대의 짐도 덜지
않겠느냐고요.
웃자는 소리겠지만 사람들은
곧 잘 불온한 생각을 합니다.
말대로 세상에 노인들이
한순간 다 사라지면
사회가 젊어지고, 활력이 넘쳐
삶의 질이 크게 향상 될까요 ?
'마오쩌둥' 시절,
중국 전역에 나붙은 포스터가
생각납니다.
소년이 새총으로 참새를
겨냥하고 있는
그 유명한 참새 포스터입니다.
1950년대 후반,
농촌 순시를 마치고 온
마오쩌둥이 인민의식량인
곡식을 대량 축내는 참새를
박멸하라는 지시를 내렸지요.
그 결과
한 해 동안 2억 마리의
참새가 사라졌습니다.
박멸 작전은 성공해 보였지만
기다린 풍년이 왔을까요 ?
참새가 사라진 자리엔
생각지 못한 메뚜기떼와
해충들이 들끓어 풍년은 커녕
심한 흉년을 겪습니다.
계속된 흉년으로 1958년부터
3년간 2,500만 명이 굶어 죽는
비참하고 끔찍한 대참사를
내고 말았지요.
다급해진 정부가 소련에서
참새 수십만 마리를 긴급 수입도
해보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베트남도
쥐떼의 창궐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었지요.
그러자 쥐 섬멸을 목표로
나라가 나섰습니다.
쥐꼬리를 가져오면 포상하는
시책을 폈다고 하는데,
문제는 포상금은 늘어나는데
쥐가 줄지 않는 것입니다
꼬리 만 자르고 쥐들을
풀어주었기 때문이었죠.
쥐를 번식시켜서 더 많은 꼬리를
얻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 제도도 실패로 끝날 수밖에요.
세상엔 거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 이유를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남녀노소, 유익균과 유해균,
익조와 해조가 필요에 의해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존재합니다.
자연 질서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게
먹이 사슬입니다.
그것이 밸런스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생명권의 안녕과
재앙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지쳐 희망을 접었다는
학생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왔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해왔는데 부족한 성적 때문에
기업의 해외 연수생 모집에 응시를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힙니다.
정말 잠 안 자고
못 먹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는데, 지금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했어요. 교수는 그 학생의
성실한 생활 태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스승은 학생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격려를 전할까 생각 하다가
스승은 제자에게 말합니다.
“네가 살아온 삶이 네 스펙이다.”
접수부터 하라고 권했습니다.
“학점이 'all B' 이상여야 하는데
C가 하나 있어요.”
스승이 제자의 등을 두드리며
“학점이 다가 아니다.
너만의 스펙이 있잖니?
추천서는 내가 써주마”★ 라고
말했어요.
결국 학생은 선발되었고,
1년 연수를 성실하게 마치자
곧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됩니다.
그리고 런던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았어요.
‘내가 살아온 것이 내 스펙’
이라고 알려준 스승의 한 마디가
절망의 어둠 속 인생을
부활시킨 겁니다.
스승의 그 한 마디에
열등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유를
찾은 제자는 런던에 부임한 첫날 밤,
비 오는 테임즈 강가에서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스승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버립니다.
희망, 꿈, 환상, 미래까지 다 덮어요.
그러나 칠흑의 어둠도
한 줄기 빛에 날아갑니다."
영화 ‘미션’ 첫 장면에
성경 구절을 인용한 자막이 뜹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과
역경이 따라붙지만 그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이 어딘가에
열려 있다고 하죠.
인생이 매력적인것은
‘고난을 거듭할수록 지혜는
쌓이고 나를 강하게 만든다’ 는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바로 앞에 두고
쓰러진다고 해요.
터널 끝을 눈앞에 두고. . .
시련의 순간을 좀만 더
견뎌냈더라면 승리할텐데...
이 고통의 법칙은 우리가 사는 지상의
언어요 약속입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존중해 줄까요?
나는 나다운 멋이 있고 재능을 지닌
존재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모르거나 비하하고 있을 뿐이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이가
역경에서 이깁니다.
올 한 해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고 계속 걸어요.
때가 되면 자신이 바로 비장의무기랍니다.
가장 완벽한 정보는
내가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것과
아슬아슬하게 패한 것에 있습니다.
그게 바로 나 자신입니다.
터널은 끝이 있고,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기다립니다.
< 이관순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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