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에 해가 걸려 있으면 말이야”
하고 중령이 끼어든다.
“열두 시가 아니고 한 시야.”
슈호프가 눈을 치켜뜨며 반박한다.
“그럴 리가.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때는 정오야.”
중령이 되받아친다.
“명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그따위 법을 누가 만들었는데?”
“그야 소비에트 정부지.”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중에서. -
솔제니친,
자유 없는 세상의 참혹함을 증언하다
많은 독자가 달콤한 연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밑바닥에서도
인간의 권력 욕망이 꿈틀거린다.
사랑받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왜곡되면
추앙받고 싶고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자란다.
열등감이 큰 사람일수록 세상을 마음대로 휘젓길 바라고,
사랑과 정의란 이름으로 사람을 밟고 서서 군림하길 원한다.
소련군 장교였던 27세의 솔제니친은
스탈린을 비난하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발각,
10년간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힌다.
그때 경험을 녹여 1962년에 발표한 첫 소설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다.
영하 27도, 언제나 그랬듯 춥고 배고프고 고됐지만
영창에도 끌려가지 않았고 평소보다
죽 한 그릇을 더 먹을 수 있었던 하루를 보낸 주인공은
시린 밤, 새우잠을 청하면서도 행복을 느낀다.
외모와 장애, 학식과 출신 등,
온갖 열등감에 시달렸던 스탈린을 작가는
태양마저 지배하려는 사람,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까지 결정하는 인간이라 말하고 있다.
스탈린 사후, 체제는 더욱 강화되었고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나 시상식에도 참석할 수 없게 했던 소련은
솔제니친이 공산 사회의 공포를 더 상세히 묘사한
'수용소 군도'를 발표하자 해외로 추방해버렸다.
척박한 땅에도 씨앗을 뿌리고
눈앞이 캄캄한 밤에도 별을 찾는 것이 인간이지만,
밝고 따뜻한 것을 미워하고 어둠을 숭배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들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나서야
소설 같은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너무 늦다.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는 연애와 사랑조차 쓰디쓴 꿈,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조차 사치일 뿐이다.
- 소설가 / 김규남, <조선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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