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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등급

광솔 88 2021. 11. 30. 06:03

 

백수(白壽)의 장수시대에 백수(白手)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백수라고 다 같은 백수가 아니다.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처럼 백수에도 4개의 등급이 있다.

첫 번째가 방백이다.

정년퇴직 후 방에서만 생활하는 부류이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마누라 눈치만 슬슬 살핀다.

카스트의 최하층 수드라(천민)처럼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등급이 동백이다.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어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다.

동네 뒷산에 오르며 하루를 소진하기도 한다.

동백은 카스트의 바이샤(평민) 계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가 반백(半白)이다.

원래 백수는 일을 안 해서 손(手)이 하얗다(白)고 해서 생긴 말이다.

반백은 두 손 중 하나만 희다는 것인데 골프와 관련이 깊다.

돈이 많아 한 주에 두세 번 골프를 치다 보니 골프 장갑을 끼는 왼손만 희기 때문이다.

화려한 백수라는 의미에서 화백으로 불리기도 한다.

카스트에서 귀족 계급인 크샤트리아에 해당한다.

마지막 네 번째가 최상위 브라만(사제) 격인 올백이다.

여기서 白은 ‘비어 있음’을 가리키고, 올백은 '완전한 비움', '완전한 백지'를 의미한다.

정년퇴직한 백수는 새로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

1막이 생계와 돈을 위해 살았다면 2막은 진정한 행복의 여정을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러자면 마음속의 욕심이나 1막의 습성 따위를 모두 비워내는 올백의 정신이 필요하다.

새봄에 꽃과 새싹을 튀우기 위해 묵은 잎들을 완전히 털어내는 가을의 나무처럼 말이다.

인생 2막에는 마음의 백지 위에 자기 삶을 다시 그려가야 한다.

각자 욕심을 내려놓고 삶에서 의미 있는 점을 매일 하나씩 백지에 찍어나가자.

언젠가 가장 아름다운 자화상이 완성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 배연국의 행복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