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
어떤 할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성격이 난폭해지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웃집 꼬마가 할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30분쯤 아이를 만난 할아버지는 갑자기 태도가 온순해졌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아이에게
“할아버지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아이가 대답했다.
“그냥 할아버지 하고 같이 울었어요.”
한글 사랑에 일생을 바친 최현배 선생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르고 감옥을 나왔을 때의 일이다.
한 청년이 매일 새벽 선생의 집에 찾아와 앞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마을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청년이 말했다.
“저는 함흥 감옥에서 선생님과 한방에 있었습니다.
제가 배탈이 나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었죠.
선생님께선 굶으면 낫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혼자선 어려울 테니 같이 굶자’고 하시면서 저와 함께 굶으셨어요.
밤늦게까지 저의 아픈 배를 어루만지며 돌봐주셨지요.
감옥에서 받은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이렇게 마당을 쓰는 것입니다.”
아픈 이에게 베푸는 최고의 위안은 그 아픔을 함께 하는 것이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보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에게 더 따스함을 느낀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에 비를 흠뻑 맞은 일이 있었다.
빗소리, 바람소리, 물 흐르는 소리에 흠뻑 빠져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그걸 본 어머니는 빨리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야단치지 않았다.
아들에게 다가가 꼭 껴안아주었다.
함께 비를 맞으면서 자연의 교향곡을 들었다.
훗날 영혼을 울리는 교향곡의 싹은 아마 그때 움트지 않았을까.
공자는 평생 간직할 만한 한 가지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恕(서)”라고 외쳤다.
恕는 如(같을 여)와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이다.
나의 마음이 상대와 같아지는 게 ‘서’라는 것이다.
공감은 그의 처지에서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인격체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 선 행하기 어렵다.
매사 남 탓하는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경지일 것이다.
- 배연국의 행복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