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이 없는 집.
새는 아이들에게 비바람 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비바람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사람사전" 은 ‘둥지’를 이렇게 풀었다.
나는 이곳에 매주 단어 하나를 초대한다.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초대한다.
오늘은 둥지다.
둥지를 초대한 건 자식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데,
초대의 목적은 여느 날과 다르다.
자식을 조금 덜 귀하게 생각하자는 뜻으로 초대했다.
우리 머릿속에는 지독한 편견 하나가 살고 있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은 다르다고 믿는 편견.
편견은 이렇게 말한다.
남의 자식은 공공장소를 뛰어다니며 주위에 불편을 주는 아이지만,
내 자식은 낯선 곳에 데려가도 주눅 들지 않는 아이다.
남의 자식은 착한 내 아이를 꾀어 수렁에 빠뜨리지만,
내 자식은 친구를 잘 못 만나 수렁에 빠진다.
남의 자식은 불량해서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하지만,
내 자식의 술 담배는 그 나이에 흔히 하는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다.
남의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를 못해서고,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다.
같은 자식인데 앞에 붙은 말이 ‘나’인가 ‘남’인가에 따라
편견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편견은 지붕이 된다.
한 인생이 비바람 뚫고 날아오르는 걸 방해하는 무거운 지붕이 된다.
보호가 과하면 그건 보호가 아니라 구속이다.
감금이다.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
그것은 내 자식을 조금 덜 사랑하는 것 아닐까.
세상 모든 자식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것 아닐까.
사랑한다면 덜 사랑하자.
- 정철 카피라이터,<사람사전> 2020.0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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